전략을 이야기할 때 바깥을 먼저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장의 크기, 경쟁자의 움직임, 점유율의 증감 같은 것들요. 하지만 손에 잡힐 듯한 숫자들에 속기도 합니다. 어떤 기업은 그 숫자들 사이에서 길을 잃습니다. 분명히 열심히 달렸는데 다음 계절이 오면 또 다른 판이 열려버리거든요.
1990년, 게리 하멜과 C K 프라할라드는 시선을 안쪽으로 돌려놓았습니다. 사업부의 합이 기업이 아니라 핵심 역량의 포트폴리오가 기업이라고요. 그들은 제품은 바뀌고 시장은 이동하지만 기업이 반복해서 잘할 수 있는 능력이 미래를 결정한다 말합니다. 듣는 순간 고개가 끄덕여지는 주장이지만 실행하려 하면 난도가 올라갑니다. 그래서 핵심 역량은 전략의 언어이면서 동시에 경영의 습관을 바꾸는 주문이 됩니다.
이 글은 핵심 역량이 무엇이고 그 핵심 역량을 핵심 역량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또, 어떻게 해야 핵심 역량이 무엇인지 알고 키울 수 있으며 조직 전체에 흐르게 할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디지털 전환과 생태계 경쟁 속에서 이 개념이 왜 더 중요해졌는지 알아보려 합니다. 목표는 기업의 미래를 오늘의 역량으로 설계하는 것입니다.
핵심 역량은 무엇인가
핵심 역량은 기업이 경쟁사와 구별되는 독특한 능력의 집합체입니다. 하멜과 프라할라드는 이를 나무의 뿌리에 비유했습니다. 줄기는 핵심 제품, 가지는 사업부, 잎과 꽃은 최종 제품을 상징하지요. 눈에 띄는 것은 언제나 잎과 열매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생장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땅속의 뿌리입니다. 바로 핵심 역량이 그 뿌리입니다.
이 비유가 좋은 이유는 현실을 잘 담고 있어서입니다. 제품은 언젠가 성숙기에 들어서고 사업부는 합쳐지거나 쪼개지며 어떤 산업은 통째로 재편됩니다. 그런데도 어떤 기업은 다음 시장으로 자연스럽게 걸어 들어갑니다. 그 기업이 가져간 것은 특정 제품이 아니라 반복 가능한 능력입니다. 뿌리가 건강하면 가지의 형태가 바뀌어도 생명력은 유지되니까요.
여기서 중요한 구분이 하나 있습니다. 잘하는 것과 핵심 역량은 다릅니다. 오늘 잘하는 일은 내일의 경쟁 우위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핵심 역량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강해지고 더 다양한 분야로 번역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뿌리의 성질이니까요.
핵심 역량을 판별하는 세 가지 조건
핵심 역량은 그럴듯한 구호로 포장하기 쉬운 개념입니다. 그래서 하멜과 프라할라드는 조건을 붙였습니다. 진정한 핵심 역량이 되려면 세 가지를 충족해야 한다고요.
(1) 고객에게 실질적 가치를 제공하는가
기술이 뛰어난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고객이 그 가치를 체감해야 합니다. 내부에서 자랑스러운 기술이 시장에서는 무의미할 때가 있지요. 핵심 역량은 고객의 경험을 바꾸는 힘이어야 합니다.
(2) 경쟁사가 쉽게 모방할 수 없는가
모방 불가능성은 단순히 특허의 문제로 끝나지 않습니다. 조직 문화, 프로세스, 암묵지, 협업 방식 같은 것들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조합일수록 모방은 어려워집니다. 핵심 역량은 복제보다 축적에 가깝습니다.
(3) 다양한 시장과 제품으로 확장 가능한가
한 제품에만 있는 능력은 특정 기술이나 기능일 가능성이 큽니다. 핵심 역량은 다른 제품군과 다른 시장에서 변주될 수 있어야 합니다. 뿌리는 한 가지에만 영양을 보내지 않으니까요.
이 조건을 떠올리면 유명한 사례들이 왜 오래 살아남는지도 다시 보입니다. 소니의 소형화 기술, 혼다의 엔진 기술, 3M의 접착 기술. 각각의 역량은 하나의 히트 제품을 넘어 다양한 제품군으로 확장되며 기업의 정체성을 단단히 만들었습니다.
사업부가 아니라 역량의 포트폴리오로 기업을 보기
당시 많은 기업은 사업 포트폴리오 관리와 시장 점유율에 집중했습니다. 하멜과 프라할라드는 그 흐름을 뒤집습니다. 기업을 사업부의 집합체로 볼 것이 아니라 핵심 역량의 포트폴리오로 봐야 한다고요.
이 관점이 중요한 이유는 자원 배분의 기준을 바꾸기 때문입니다. 사업부 중심 사고에서는 각 사업부가 손익과 목표를 기준으로 움직입니다. 그 과정에서 조직 전체의 장기적 역량은 쪼개지고 서로의 성장을 돕기보다 성과를 두고 경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되면 단기 실적은 좋아 보이지만 다음 게임에서 쓸 패가 줄어들게 되죠.
역량 중심 사고는 반대로 묻습니다. 다음 5년 혹은 10년 동안 확장하려면 어떤 능력을 키워야 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시작하면 지금의 제품과 오늘의 시장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 조직 내부에 스며듭니다. 그리고 전략은 바깥의 위치가 아니라 안쪽의 기반을 설계하는 일이 됩니다.
핵심 역량 전략을 실행하는 세 단계
핵심 역량은 선언으로 끝나면 오히려 해가 됩니다. 이름 붙이고 포스터로 만들어도 뿌리는 자라지 않습니다. 실행의 핵심은 식별, 강화, 공유입니다. 하멜과 프라할라드가 강조한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 보겠습니다.
1단계 식별
경영진이 던져야 할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Q1. 우리가 경쟁사보다 월등히 잘하는 것은 무엇인가?
Q2, 그리고 그 능력은 다양한 시장에서 활용될 수 있는가?
많은 기업이 이 단계에서 실수합니다. 잘하는 일을 핵심 역량으로 착각하죠. 운영 효율이 높은 것은 강점일 수 있지만 경쟁 우위의 뿌리인지 여부는 따져봐야 합니다. 그 효율이 고객 가치로 이어지는지, 모방이 어려운지, 다른 시장으로 확장되는지. 이 질문을 통과해야 비로소 핵심 역량이라는 이름이 붙습니다.
2단계 강화
핵심 역량은 장기 투자로만 자랍니다. 단기 재무 성과에만 집중하면 역량에 대한 투자는 늘 후순위로 밀립니다. 캐논이 광학 기술에, 샤프가 디스플레이 기술에 수십 년간 투자한 사례가 자주 언급되는 이유입니다.
강화는 단지 연구개발 예산을 늘리는 일이 아닙니다. 사람을 뽑고 학습을 설계하고 실패를 축적하고 무엇보다 그 역량이 성장할 시간을 주는 일입니다. 뿌리가 깊어지는 데는 계절이 필요하니까요.
3단계 공유
핵심 역량이 조직의 자산이 되려면 특정 사업부나 특정 팀의 소유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업부 간 경계를 넘어 역량이 이동하고 재조합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협력과 지식 공유를 장려하는 시스템 그리고 폐쇄적 조직 문화를 극복하려는 의지가 필요합니다.
이 단계에서 전략은 조직 설계와 맞닿습니다. 인사 제도, 성과 평가, 예산 배분, 프로젝트 운영 방식. 모두가 역량이 흐르도록 설계되어야 합니다. 핵심 역량은 결국 관리의 대상입니다. 방치하면 굳고 돌보면 자랍니다.
디지털 전환 시대, 핵심 역량이 더 중요해진 이유
기술 변화가 빠르고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핵심 역량의 의미는 커집니다. 시장 환경이 급변하고 기술 수명 주기가 짧아지면 특정 제품의 우위는 쉽게 사라집니다. 그럴수록 기업은 더 유연하면서도 지속 가능한 경쟁 우위를 확보해야 합니다.
오늘날 기업들은 기존 역량에 디지털 역량을 결합해 새로운 가치를 만듭니다. 나이키는 운동화 제조 역량에 디지털 플랫폼 역량을 더해 스포츠 생태계 전반을 아우르는 기업으로 진화했습니다. 테슬라는 전기차 기술과 소프트웨어 역량을 결합해 자동차 산업의 규칙을 바꿨습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지점은 결합입니다. 핵심 역량은 고립된 기술이 아니라 조합 가능한 능력입니다. 디지털 전환은 기존 역량을 폐기하라는 요구가 아니라 그 역량을 새로운 언어로 번역하라는 요구에 가깝습니다.
생태계 전략과 오픈 이노베이션, 그럼에도 내부에 남겨야 할 것
협력의 시대가 열리면서 핵심 역량을 내부에서만 개발해야 한다는 생각은 약해졌습니다. 외부 파트너와의 협력으로 역량을 보완하는 전략도 확산되었지요. 다만 여기에는 원칙이 필요합니다. 기업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고유한 핵심 역량은 반드시 내부에서 통제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점입니다.
애플의 사례가 자주 언급되는 이유도 이것입니다. 애플은 디자인과 사용자 경험이라는 핵심 역량을 내부에서 철저히 관리하면서 제조와 부품 공급은 외부 파트너와 협력합니다. 무엇을 밖으로 내보내고 무엇을 안에 남길지의 기준이 핵심 역량입니다.
생태계 경쟁은 더 많은 손을 잡는 싸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누구인지 더 명확히 말할 수 있어야 하는 싸움이기도 합니다. 협력의 범위가 넓어질수록 핵심 역량의 경계는 더 정교하게 그려져야 합니다.
핵심 역량을 전략 회의에서 꺼내는 방법
핵심 역량을 논의할 때 거창한 언어부터 시작하면 대개 흐려집니다. 차라리 질문을 잘 세팅하는 편이 낫습니다.
Q. 우리가 고객에게 계속해서 제공할 수 있는 고유한 가치는 무엇인가?
Q. 그 가치를 가능하게 만드는 능력은 정확히 무엇인가?
Q. 그 능력은 경쟁사가 쉽게 따라올 수 없는가?
Q. 그 능력은 다른 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는가?
Q. 우리는 그 능력에 충분히 투자하고 있는가?
Q. 그 능력은 사업부의 벽을 넘어 공유되고 있는가?
질문이 구체적일수록 답도 구체적이 됩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답은 실행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핵심 역량 전략이 강력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막연한 미래에 대해 오늘의 투자와 조직 설계를 할 수 있게 해 주거든요.
핵심 역량은 단기 성과를 보장해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중요합니다. 급격한 변화 속에서 기업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지금 팔고 있는 제품이 아니라 앞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에 기대야 하니까요.
하멜과 프라할라드의 통찰은 3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기술 변화가 더 빨라진 오늘 그 통찰은 더 실감 나게 다가옵니다. 성공하는 기업은 시장의 단기적 변화에만 반응하지 않습니다. 자신만의 핵심 역량을 꾸준히 발전시키며 그 역량으로 새로운 기회를 포착합니다.
결국 전략은 포지셔닝의 문제가 아니라 정체성의 문제로 돌아옵니다. 무엇을 파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가장 잘할 수 있는 조직인가. 이 질문을 매년, 매 분기, 매 프로젝트마다 되묻는 기업만이 미래를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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