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을 공략하겠다' 던 야심 찬 계획이 무참히 무너지고 3년 동안 겨우 7만 명의 가입자를 모은 앱. 투자자들은 고개를 저었고 주변에서는 사업을 접으라는 조언이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당근마켓은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모두가 예상하지 못한 선택을 합니다. 바로 축소였습니다.
화려한 시작 그리고 뼈아픈 실패
2015년, 김재현, 김용현 두 공동창업자가 만든 당근마켓(당시 이름은 '판교장터')은 중고거래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자 했습니다. 당시 중고거래 시장은 전국구 플랫폼인 중고나라나 번개장터가 장악하고 있었죠, 당근마켓도 자연스럽게 전국 시장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창업자들은 확신에 차 있었습니다. 위치기반 서비스라는 차별점이 있었고 동네 주민끼리 거래하면 더 안전하고 편리하다는 가치 제안도 분명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전국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오픈했지만 사용자는 모이지 않았고 3년이 지나도록 가입자는 고작 7만 명에 불과했습니다.
로컬 기반 중고거래는 네트워크 효과가 생명인데 사용자가 전국에 흩어져 있으니 어느 지역에서도 충분한 거래가 일어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서울에 사는 사용자가 앱을 켜도 근처에 올라온 물건이 하나도 없었죠. 부산 등 다른 도시에 사는 사용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결국 사용자들은 앱을 설치하고도 금방 이탈했습니다.
절체절명의 순간 - 역발상 전략
2018년 당근마켓은 생존의 기로에 섰습니다. 계속 이대로 가다가는 망하는 것이 뻔했습니다. 창업자들은 고민 끝에 모두가 놀랄 만한 결정을 내립니다. 전국 서비스를 포기하고 단 한 곳. 경기도 판교에만 집중하기로 한 것입니다.
일반적인 스타트업 논리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선택이었습니다. 성장하는 스타트업은 시장을 확장하는 것이 정석인데, 오히려 시장을 축소한다니요. 하지만 창업자들은 본질을 꿰뚫었습니다. 넓고 얕게 퍼지는 것보다 작더라도 한 지역에서 완벽한 경험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요.
판교를 선택한 이유도 전략적이었습니다. IT 기업이 밀집한 지역이라 얼리어답터가 많았고 신도시 특성상 비슷한 생활 패턴을 가진 젊은 가족들이 모여 살아 중고거래 수요가 풍부했습니다. 무엇보다 지리적으로 좁은 면적이라 빠르게 임계점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작은 연못의 큰 물고기 전략
판교에 올인하자 마법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모든 마케팅 역량을 판교에만 쏟아부었습니다. 아파트 단지마다 전단지를 돌렸고 지역 맘카페에 직접 찾아가 홍보했습니다. 심지어 창업자들이 직접 판교 거리를 돌아다니며 상인들에게 앱을 설명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판교 지역에서 사용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아파트 단지에서 임계점을 넘자 입소문이 퍼져나갔고 이웃 단지로 인근 동네로 자연스럽게 확산되었습니다. 사용자가 늘자 올라오는 물건도 많아졌고 물건이 많아지자 더 많은 사람들이 앱을 찾았습니다. 선순환이 시작된 것입니다.
판교에서 성공 방정식을 만든 당근마켓은 이를 인근 분당, 수지 등으로 조심스럽게 확장했습니다. 한 지역에서 충분한 사용자 밀도가 확보되면 그다음 지역으로 넘어가는 식이었습니다. 마치 바둑돌을 하나씩 놓듯이 확실하게 장악한 후에야 다음 수를 두었습니다.
로컬의 힘, 신뢰의 회복
당근마켓의 전략이 빛을 발한 또 다른 이유는 신뢰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입니다. 기존 전국구 중고거래 플랫폼의 가장 큰 문제는 사기와 먹튀였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거래하다 보니 불안감이 컸고 실제로 사기 사건도 빈번했습니다.
하지만 당근마켓은 달랐습니다. '우리 동네'라는 개념이 심리적 안전장치가 되었습니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이웃일 수도 있고 아이들이 같은 학교에 다니는 학부모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지리적 근접성은 자연스럽게 신뢰를 형성했고 직거래 문화를 정착시켰습니다.
또한 동네 기반이라는 특성은 중고거래를 넘어 지역 커뮤니티로 진화할 가능성을 열었습니다. 동네 맛집 추천, 분실물 찾기, 재능 나눔 등 다양한 지역 기반 서비스로 확장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것입니다.
3,000만 다운로드, 대한민국 국민 앱으로
작고 좁은 판교에서 시작한 실험은 대성공이었습니다.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전국 확장에 나선 당근마켓은 무서운 속도로 성장했습니다. 2020년 1,000만 다운로드를 돌파했고 2021년에는 2,000만, 2023년에는 3,000만 다운로드를 넘어섰습니다.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사용하는 국민 앱이 된 것입니다.
2021년에는 기업 가치 3조 원을 인정받으며 유니콘 기업 반열에 올랐고 미국, 영국, 캐나다 등 해외 시장에도 진출했습니다. 망할 뻔했던 로컬 앱이 글로벌 플랫폼으로 성장한 것입니다.
당근마켓이 주는 교훈
당근마켓의 성공 스토리에서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 작게 시작해서 깊게 파고드는 것의 중요성입니다. 무조건 크고 넓은 시장을 노리기보다 작더라도 완벽하게 장악할 수 있는 시장에서 시작하는 것이 성공 확률을 높입니다. 당근마켓은 판교라는 작은 연못에서 큰 물고기가 되는 경험을 통해 성장의 방정식을 찾았습니다.
둘째, 네트워크 효과를 이해하고 임계점을 만드는 전략입니다. 플랫폼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충분한 사용자 밀도입니다. 얕고 넓게 퍼지면 어디서도 임계점에 도달하지 못하지만 한곳에 집중하면 폭발적인 성장의 기폭제를 만들 수 있습니다.
셋째, 실패를 인정하고 방향을 전환하는 용기입니다. 3년간의 실패를 인정하고 완전히 다른 전략을 시도한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실패를 외면하지 않고 본질적인 문제를 파악해 해결책을 찾아낸 것이 오늘날의 당근마켓을 만들었습니다.
당근마켓의 이야기는 위기가 끝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때로는 축소가 확장의 시작이 되고, 작은 성공이 큰 성공의 토대가 됩니다. 중요한 것은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과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용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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