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어느 날 우아한 형제들 사무실은 유난히 조용했습니다. 통장 잔고는 바닥이었고 월급날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김봉진 대표는 결국 개인 신용카드를 꺼냈습니다. 회사 돈이 아닌 자신의 카드로 현금서비스를 받아 직원들 월급을 챙기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날도 그는 같은 말을 되뇌었을지 모릅니다. 이번 달만 넘기면 된다.
이 말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몇 달 아니 1년 넘게 이어졌습니다. 배달의민족은 5년 동안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누적 적자는 수십억 원에 달했고 주변에서는 하나같이 사업을 접으라는 조언이 이어졌습니다. 배달 앱이 무슨 사업이 되겠느냐는 냉소가 당연했던 시절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배달의민족은 접지 않았습니다. 대신 버텼습니다. 자본이 아닌 다른 것으로 싸우겠다는 어쩌면 무모해 보이는 선택과 함께요.
순진했지만 분명했던 출발점
배달의민족의 시작은 전단지를 보고 전화로 주문하는 것보다 앱으로 주문하면 더 편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했습니다. 당시 배달 음식을 시키는 과정은 번거로웠습니다. 냉장고에 붙어 있는 전단지를 찾고 메뉴를 보고 주소와 주문을 여러 번 반복해야 했습니다.
시장 자체는 분명히 있었습니다. 한국인의 배달 음식 사랑은 이미 유명했고 시장 규모도 컸습니다. 문제는 구조였습니다. 수만 개의 음식점을 설득해야 했고 사용자들의 오랜 습관을 바꿔야 했으며 무엇보다 명확한 수익 모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2010년 6월 배달의민족 앱이 출시됐지만 반응은 미지근했습니다. 입점 음식점도 사용자도 부족했습니다. 전형적인 닭과 달걀의 문제였습니다. 이 시점에서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방향을 틀거나 속도를 줄이거나 조용히 사라집니다. 배달의민족은 대신 시간을 선택했습니다.
5년간 이어진 적자 그리고 버티기
2010년부터 2015년까지 배달의민족은 단 한 해도 흑자를 내지 못했습니다. 수익 모델은 음식점 광고비였지만 영세한 음식점들이 쉽게 지갑을 열 리 없었습니다. 광고 효과에 대한 의심도 컸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현금 흐름이었습니다. 직원들 월급을 제때 주지 못할 뻔한 순간이 반복됐고 김봉진 대표는 개인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았습니다. 가족과 친구들은 걱정하는 마음에 이쯤 되면 멈추는 게 맞지 않겠느냐는 말도 했습니다.
하지만 배달의민족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함께 버티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주 조금씩이지만 사용자 수가 늘고 있었습니다. 숫자는 작았지만 방향이 맞는 건 분명했습니다. 그들은 1년만 더라는 말을 전략처럼 반복하며 시간을 벌었습니다.
돈이 없다면, 정체성으로 싸운다
자본이 없는 스타트업이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은 많지 않습니다. 배달의민족이 선택한 것은 차별화였습니다. 그것도 돈이 들지 않는 방식의 차별화. 팀은 브랜드 자체를 무기로 삼기로 합니다.
첫 번째 선택은 한글이었습니다. 2012년 배달의민족은 한나체라는 자체 폰트를 개발합니다. 손글씨 느낌의 이 폰트는 기존 앱들의 차갑고 기계적인 인상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더 놀라운 점은 이 폰트를 무료로 배포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신선함에 반응했고 언론이 주목했습니다. 광고비를 쓰지 않아도 브랜드는 자연스럽게 퍼져 나갔습니다.
두 번째는 유머였습니다. 배달의민족의 카피는 노골적으로 가볍고 솔직했습니다. 야식에 대한 죄책감을 농담으로 풀어내고 일상의 감정을 건드렸습니다. 사람들은 이 광고를 공유했고 브랜드는 친근해졌습니다. 할인 쿠폰보다 기억에 남는 문장이 더 강력하다는 사실을 배달의민족은 몸으로 증명했습니다.
세 번째는 진정성이었습니다. 배달의민족은 음식점 사장님들을 수익원이 아니라 파트너로 대했습니다. 무료 사진 촬영, 메뉴판 디자인 지원, 운영 노하우 공유. 플랫폼이 갑의 위치에 서기 쉬운 구조에서 배달의민족은 의도적으로 다른 태도를 선택했습니다.
브랜딩이 만든 예상 밖의 전환점
물론 이 전략이 즉각적인 매출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변화는 나타났습니다.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기 시작한 것입니다. 배달의민족은 배달 앱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처럼 받아들여졌습니다.
한나체를 시작으로 주아체, 도현체 등 무료 폰트는 전국 곳곳에서 사용됐습니다. 카페, 식당, 심지어 공공기관까지 확산되며 브랜드는 일상 속으로 스며들었습니다. 좋은 일을 하는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쌓였습니다.
음식점 사장님들 사이에서도 평가가 달라졌습니다. 배민은 다르다는 말이 돌기 시작했고 플랫폼의 핵심 자산인 음식점 네트워크가 자연스럽게 성장했습니다. 돈을 많이 쓰지 않았지만 신뢰를 얻었습니다.
시장이 열렸을 때, 이미 준비돼 있던 기업
2013년 이후 스마트폰 보급률이 급격히 높아지며 배달 앱 시장이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배달의민족은 이미 브랜드 인지도와 충성도 높은 사용자층을 확보한 상태였습니다.
2014년 마침내 흑자 전환에 성공합니다. 5년간의 적자를 견디고 처음으로 수익을 냈습니다. 이후 성장 속도는 가팔라졌고 2015년 배달 앱 시장 1위에 올랐습니다. 같은 해 골드만삭스로부터 400억 원의 투자를 유치하며 시장의 평가도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2019년, 우아한 형제들은 독일 딜리버리히어로에 4조 7,500억 원이라는 금액으로 인수됩니다. 한때 월급조차 걱정하던 회사가 10년 만에 조 단위 기업이 된 순간이었습니다.
배달의민족이 남긴 교훈
배달의민족의 이야기는 자본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돈이 없을 때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 전략은 정체성과 태도에서 시작된다는 것 말입니다.
이들의 성공은 화려한 한 방이 아니라 버티는 시간 속에서 쌓인 선택의 결과였습니다. 고객뿐 아니라 파트너를 존중하는 태도, 단기 매출보다 브랜드를 먼저 만든 판단 그리고 무엇보다 포기하지 않은 끈기.
배달의민족은 보여줬습니다. 위기를 넘기는 힘은 숫자보다 이야기에서, 자본보다 정체성에서 나온다는 것을. 그리고 때로는 가장 단순한 전략 즉, 버티는 것 자체가 가장 어려운 선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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