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 예전 같지 않아요.'
50명이던 스타트업이 200명쯤 되면 흘러나오는 말이다. 초기 멤버들은 '예전엔 모두가 가족 같았는데', '의사결정이 빨랐는데', '자유로웠는데'라며 아쉬워한다. 성장은 축복이지만 동시에 문화의 위기다. 좋은 문화를 유지하면서 확장하는 것. 이것이 스타트업이 진짜 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가장 어려운 과제다.
스타트업 문화의 본질 시리즈 글 모음
#1. 조직문화는 스타트업의 전략
#2. 창업 초기 문화 설계
#4. 채용 및 온보딩과 문화
#5. 리더십의 언어
#6. 실패와 피드백 문화
#7. 확장기의 조직 문화 전략
확장이 문화를 위협하는 이유
조직이 작을 때는 암묵적으로 통한다. 창업자가 모든 사람과 매일 얼굴을 보고 점심을 함께 먹으며 자연스럽게 가치관을 전달한다. 하지만 100명이 넘어가면 창업자가 모든 사람을 알 수 없다. 서로 다른 층에서 일하고 다른 시간에 출퇴근하며 어떤 사람은 원격으로 일한다.
문제는 신규 입사자다. 초기 멤버들은 회사의 역사를 함께 만들었기에 '왜 우리가 이렇게 일하는지'를 체득하고 있다. 하지만 새로 들어온 사람들은 맥락이 없다. '원래 그렇게 하는 거래요'라는 말만 들으면 형식만 남고 본질은 사라진다.
또한 확장기에는 프로세스와 체계가 필요해진다. 작을 때는 '알아서 해'가 통했지만 커지면 혼란스럽다. 그래서 규칙을 만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규칙이 늘어날수록 초기의 자유로운 문화는 희석된다. 이것이 확장의 딜레마다.
문화를 코드화하라
문화를 유지하는 첫 번째 전략은 암묵적 문화를 명시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원래 이래'가 아니라 '우리는 이런 가치를 지키기 위해 이렇게 일한다'로 바꿔야 한다.
넷플릭스의 문화 덱(Culture Deck)을 보자. 자유와 책임, 맥락 기반 의사결정, 솔직한 피드백 같은 추상적 가치를 구체적인 행동 원칙으로 풀어냈다. 덕분에 직원이 수천 명으로 늘어나도 초기 문화가 유지되었다. 신입사원도 이 문서를 읽으면 넷플릭스답게 일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문서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살아있게 만드는 것이다. 문서가 서랍 속에 묻히지 않도록 온보딩, 회의, 평가 등 모든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언급하고 적용해야 한다.
문화 전파자를 키워라
창업자 혼자서는 문화를 전파할 수 없다. 조직이 커지면 문화를 체화한 사람들이 각 팀에서 전파자 역할을 해야 한다. 이들이 바로 컬처 캐리어(Culture Carrier)다.
에어비앤비는 초기 멤버들을 의도적으로 새로운 팀에 배치했다. 한 팀에 적어도 한 명의 초기 멤버가 있도록 해서 그들이 문화의 DNA를 전달하게 했다. 마치 효모가 반죽 전체를 발효시키듯 문화 전파자가 조직 전체에 퍼지는 것이다.
또한 리더급 채용이 중요해진다. 확장기에 들어오는 임원과 팀장들이 기존 문화를 이해하고 지지하지 않으면 그 아래 팀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래서 성장하는 스타트업일수록 시니어 채용에서 컬처 핏을 더욱 엄격하게 본다.
프로세스는 문화를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많은 사람들이 프로세스와 문화를 대립적으로 본다. '프로세스가 생기면서 자유로운 문화가 사라졌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제대로 설계된 프로세스는 문화를 보호한다.
토스는 빠르게 성장하면서도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이라는 문화를 지키기 위해 의사결정 프로세스를 체계화했다. 모든 제안서에 가설, 실험 설계, 지표를 필수로 포함하게 했다. 형식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이 프로세스 덕분에 조직이 커져도 감이 아닌 데이터로 판단하는 문화가 유지되었다.
구글의 OKR도 마찬가지다. 목표와 핵심 결과를 명확히 하는 프로세스를 통해 투명성과 자율성이라는 문화를 확장 가능하게 만들었다. 프로세스는 문화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스케일 하는 도구다.
작은 팀 구조를 유지하라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는 투 피자 룰(Two Pizza Rule)로 유명하다. 한 팀이 피자 두 판으로 식사할 수 있는 크기를 넘지 않게 하라는 것이다. 대략 6~8명 정도. 조직이 커져도 작은 팀 구조를 유지하면 각 팀 내에서는 초기 스타트업 같은 친밀함과 기동성을 유지할 수 있다.
스포티파이는 '스쿼드(Squad)' 시스템으로 유명하다. 전체 조직을 작은 자율 팀들로 나누고 각 팀에게 명료하고 확실하게 미션과 자율권을 준다. 회사는 수천 명이지만 실제 일하는 단위는 10명 이하다. 이렇게 하면 큰 조직의 자원과 작은 팀의 문화를 동시에 가질 수 있다.
물리적 공간도 문화를 만든다
사무실 디자인은 미적 선택이 아니라 문화적 선택이다. 협업을 중시한다면 오픈 스페이스와 공용 공간을 만든다. 집중을 중시한다면 개인 공간을 충분히 제공한다.
픽사는 건물 중앙에 거대한 아트리움을 두고 우편함, 카페테리아 그리고 회의실을 모두 그곳에 배치했다. 다른 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마주치고 대화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이런 우연한 만남에서 창의적 협업이 시작된다는 믿음 때문이다.
확장하면서 여러 층이나 여러 건물로 나뉘면 물리적 거리는 심리적 거리가 된다. 3층 팀과 5층 팀이 생기고 서로 다른 하위문화가 형성된다. 이를 방지하려면 의도적으로 섞이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전체 회의, 타운홀, 층간 교류 이벤트 같은 것들이다.
의식과 상징을 만들어라
문화는 추상적이기 때문에 가시적인 의식과 상징이 필요하다. 정기적으로 반복되는 의식은 문화를 강화한다.
세일즈포스는 매주 금요일 Ohana Culture 행사를 연다. 오하나는 하와이어로 가족을 뜻하는데 전 직원이 모여 성과를 축하하고 가치를 공유한다. 회사가 6만 명이 넘었지만 여전히 이 전통을 지킨다.
확장 속도를 조절하라
가장 어려운 선택이지만 때로는 확장 속도를 늦춰야 한다. 너무 빨리 성장하면 문화가 따라오지 못한다. 적절한 사람을 채용할 시간도 새로운 사람을 온보딩할 여력도 부족해진다.
베이스캠프(Basecamp)의 창업자 제이슨 프라이드는 의도적으로 느린 성장을 택했다. 폭발적으로 성장할 기회가 있었지만 그보다 좋은 문화를 유지하는 것을 우선했다. 베이스캠프는 작지만 강한 조직이 되었다.
물론 모든 스타트업이 이런 선택을 할 수는 없다. 시장 상황이나 투자 조건 때문에 빠르게 키워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럴 때도 '지금 우리의 확장 속도를 문화가 감당할 수 있는가?'를 계속 질문해야 한다.
문화는 진화해야 한다
문화를 유지한다는 것은 그대로 두는 것이 아니라 진화시키는 것이다. 10명일 때의 문화와 1000명일 때의 문화가 똑같을 수는 없다. 핵심 가치는 지키되 실천 방법은 바뀌어야 한다.
빠른 의사결정이 핵심 가치였다면 10명일 때는 창업자가 즉석에서 결정했다. 하지만 100명이 되면 같은 방식은 불가능하다. 대신 팀에 권한을 위임하고 명확한 의사결정 프레임워크를 만들어야 한다. 방법은 다르지만 빠름이라는 본질은 유지되는 것이다.
페이스북(메타)은 'Move Fast and Break Things'에서 'Move Fast with Stable Infrastructure'로 슬로건을 바꿨다. 빠르게 움직인다는 핵심은 같지만 규모에 맞게 책임감을 더했다. 이것이 문화의 진화다.
확장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좋은 문화를 만드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그것을 확장하는 것은 더 어렵다. 초기의 열정과 친밀함을 그대로 유지할 수는 없다. 대신 그 본질을 시스템으로 프로세스로 의식으로 만들어야 한다.
내 조직은 지금 어디쯤 있는가? 문화가 위험 신호를 보내고 있지는 않은가? 확장의 속도와 문화 유지의 균형점을 찾았는가? 이 질문에 답하는 것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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