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프로젝트 완전히 망했습니다.'
회의실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3개월간 공들인 신규 서비스가 출시 일주일 만에 사용자 반응 없이 침몰했다. 이 순간, 리더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조직의 미래가 갈린다. '누구 책임이야?'라고 묻는 순간 팀은 움츠러든다.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라고 묻는 순간 팀은 성장한다. 성장하는 팀과 정체된 팀의 차이는 실패와 피드백을 대하는 태도에서 결정된다.
스타트업 문화의 본질 시리즈 글 모음
#1. 조직문화는 스타트업의 전략
#2. 창업 초기 문화 설계
#4. 채용 및 온보딩과 문화
#5. 리더십의 언어
실패를 숨기는 문화 vs 실패를 공유하는 문화
많은 조직에서 실패는 숨겨야 할 치부다. 작은 실수도 보고하지 않고 문제가 커질 때까지 방치한다. 왜? 실패를 보고하면 비난받거나 평가에 불이익을 받을까 봐. 이런 조직은 같은 실패를 반복한다. 한 팀이 겪은 시행착오를 다른 팀이 그대로 되풀이한다.
반면 성장하는 팀은 실패를 자산으로 만든다. 에어비앤비는 실패 사례를 공유하는 'Elephants, Dead Fish and Vomit' 미팅을 정기적으로 연다. 방 안의 코끼리(민감한 이슈), 썩은 생선(오래된 문제), 토해내야 할 것(불편한 진실)을 털어놓는 시간이다. 실패를 숨기지 않고 공개적으로 다루면서 조직 전체가 빠르게 학습한다.
아마존은 더 나아가 실패를 장려한다. 제프 베조스는 '실험을 많이 할수록 더 많은 것을 시도할 수 있다. 실패는 혁신의 필수 요소'라고 말했다. 아마존의 수많은 실패작들(파이어폰, 아마존 월렛 등)은 숨겨지지 않고 과감하게 시도하는 회사라는 정체성의 일부가 되었다.
실패 이후의 72시간이 중요하다
실패가 발생했을 때 처음 72시간이 문화를 만든다. 이 시간 동안 리더와 팀이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앞으로의 태도를 결정한다.
비난부터 시작하면 사람들은 변명하고 책임을 회피한다. '시장 상황이 안 좋아서', '다른 팀이 협조를 안 해줘서' 같은 외부 요인만 찾게 된다. 반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로 시작하면 건설적인 분석이 가능하다.
스포티파이는 프로젝트가 실패하면 바로 'Post-mortem' 미팅을 연다. 하지만 이름부터 다르다. 부검(Post-mortem)이 아니라 'Learning Review(학습 검토)'라고 부른다. 프레임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분위기가 달라진다. 이 미팅에서는 세 가지 질문에 집중한다. '무엇이 잘 되었나?', '무엇이 잘못되었나?', '다음에는 무엇을 다르게 할 것인가?' 비난 없이 오직 학습에만 집중한다.
심리적 안전감, 피드백 문화의 전제조건
구글이 고성과 팀을 연구한 Project Aristotle에서 발견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심리적 안전감이었다. 팀원들이 '내 의견을 말해도 비난받지 않는다', '실수를 인정해도 괜찮다'라고 느낄 때 솔직한 피드백이 가능하다.
심리적 안전감이 없으면 피드백은 형식적이 된다. '다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같은 무난한 말만 오가고 진짜 문제는 입 밖에 나오지 않는다. 회의가 끝나고 나서야 복도에서 '사실 저건 말이 안 되는데'라는 속삭임이 들린다.
심리적 안전감을 만드는 것은 리더의 몫이다. Pixar의 에드 캣멀은 '나는 틀릴 수 있다'라고 먼저 인정하는 리더였다. 감독들에게 '이 장면은 내가 보기엔 이상한데 내가 놓친 게 뭘까?'라고 물었다. 리더가 먼저 불완전함을 드러내면 팀원들도 자신의 약점과 실수를 숨기지 않게 된다.
피드백은 기술이다
'솔직하게 피드백하자'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떻게 피드백을 주고받을 것인지 구체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잘못된 피드백은 관계만 해치고 개선은 일어나지 않는다.
넷플릭스는 '4A 피드백' 원칙을 사용한다. Aim to Assist(돕기 위함), Actionable(실행 가능), Appreciate(감사), Accept or Discard(수용하거나 버리기)이 그것이다. 피드백의 목적은 상대를 돕는 것이지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바꾸면 좋을지 제시해야 한다. 받는 사람은 감사를 표하되 반드시 따를 의무는 없다.
토스는 피드백을 줄 때 '관찰-영향-제안' 구조를 사용한다. 회의에서 다른 사람 말을 자주 끊었다(관찰) - 그래서 의견을 내려던 사람들이 말을 하지 못했다(영향) - 상대가 말을 끝낼 때까지 기다려보면 어떨까(제안). 판단이나 비난 없이 사실과 영향 그리고 구체적 행동 변화를 제안한다.
정기적 피드백 vs 수시 피드백
많은 회사가 연 1~2회 성과 평가 때만 피드백한다. 하지만 6개월 전 일을 기억하기도 어렵다. 이미 지난 일에 대한 피드백은 개선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게다가 평가와 연결되어 있으면 방어적이 된다.
성장하는 팀은 피드백을 일상화한다. 프로젝트가 끝날 때마다, 중요한 회의 후에, 때로는 매주 간단하게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는다. '이번 프레젠테이션에서 데이터 시각화가 정말 명확했어. 다만 결론 부분을 좀 더 강조하면 더 좋았을 것 같아.' 이런 식의 즉각적이고 구체적인 피드백이 실제 행동 변화를 만든다.
깃랩(GitLab)은 완전 원격 조직인데도 피드백 문화가 강하다. 비결은 '비동기 피드백'이다. 문서, 코드 리뷰, 프로젝트 회고를 모두 기록으로 남기고 누구나 언제든 피드백을 추가할 수 있다. 실시간으로 만나지 않아도 지속적으로 피드백이 흐른다.
피드백을 요청하는 문화
더 성숙한 조직은 피드백을 주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요청하는 문화를 만든다. '내가 이번 프로젝트에서 부족했던 점이 뭘까?', '내 리더십에서 개선할 점을 알려줘.' 이렇게 먼저 피드백을 구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조직 전체의 학습 속도가 빨라진다.
브리지워터(Bridgewater)의 레이 달리오는 '래디컬 투명성(Radical Transparency)'을 강조한다. 모든 회의를 녹화하고 동료들이 서로를 실시간으로 평가하는 시스템을 운영한다. 극단적으로 보이지만 이를 통해 '내가 어떻게 보이는가'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고 계속 개선할 수 있다.
실패에서 성공으로, 구체적인 연결고리
실패를 학습으로 만들려면 구체적인 프로세스가 필요하다. '다음엔 잘하자'가 아니라 실패에서 얻은 인사이트를 다음 액션으로 전환해야 한다.
아마존은 실패한 프로젝트의 교훈을 'Working Backwards' 문서에 반영한다. 다음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과거 실패에서 배운 점을 먼저 검토하고 같은 실수를 피하는 구조를 설계한다.
슬랙은 매 분기 'Failure Wall'을 만든다. 실패 사례를 벽에 붙이고 거기서 배운 교훈과 실제로 바뀐 프로세스를 함께 적는다. 실패가 진짜 변화로 이어졌음을 가시화하는 것이다.
작은 실패를 빨리, 자주
역설적이지만 성장하는 팀은 실패를 더 자주 한다. 단, 작고 빠른 실패들이다. 큰 실패 한 번보다 작은 실패 열 번이 학습 효과가 크다. 그리고 회복도 빠르다.
린 스타트업의 'Fail Fast(빨리 실패하라)' 철학이 바로 이것이다. 완벽한 제품을 만들려고 1년을 투자했다가 실패하는 것보다 MVP를 2주 만에 만들어 테스트하고 실패하는 편이 낫다. 자원 손실도 적고 배움은 더 빠르다.
피드백 문화의 함정, 피하는 법
피드백 문화에도 함정이 있다. 과도한 피드백은 독이 된다. 모든 것에 피드백을 주고받다 보면 피로해지고 정작 중요한 것에 집중하지 못한다.
또한 피드백이 비판으로만 느껴지면 자신감을 잃는다. 좋은 피드백 문화는 긍정과 개선이 균형을 이룬다. 일반적으로 긍정 피드백과 개선 피드백의 비율이 3:1 정도일 때 가장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성장하는 팀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실패를 숨기지 않고 비난하지 않으며 학습으로 전환하는 팀. 서로에게 솔직하게 피드백하고 그것을 성장의 기회로 받아들이는 팀. 이런 팀은 개인도 조직도 계속 진화한다.
내 팀은 마지막 실패에서 무엇을 배웠는가? 오늘 누구에게 피드백을 주고 또 요청할 것인가? 이 질문에서 성장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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